스포츠

한국의 스포츠 역사와 발전

 

한국 스포츠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도 헝그리 정신으로 대변되는 투혼을 발휘하며 국제무대에서 활약했다. 또한 한국에서 열린 여러 국제대회를 통해 스포츠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이에 한국은 ‘모든 국민이 스포츠를 즐기는 활기찬 나라’라는 비전 아래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제11회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

한국은 고대부터 무술에 근거한 체육 문화가 발달했다. 신에게 올리는 제천행사에 가무를 즐기는 신체활동이 있었고 선조들은 궁술, 말타기, 택견, 씨름, 수박, 차전놀이 등 무예와 관련된 다양한 신체 활동을 즐겼다. 이외에도 다양한 민속놀이를 통해 한국인은 체력과 협동심을 길러왔다.

19세기 후반에는 조선의 문호개방과 동시에 근대 스포츠가 도입되었다. 이를 계기로 대한제국 정부는 근대 스포츠 관련 법령과 제도를 마련하였고, 체육을 학교 교과목으로 지정하는 등 체육을 장려함으로써 국민의 몸과 마음을 굳건하게 만들고자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체육이 국권 회복을 위한 도구로써 사용되었다. 당시 조선인은 식민지 상황 때 문에 체육활동에 제한이 있었다. 그러나 3·1 운동을 계기로 민족적 자주독립의식이 고취되었으며 더 불어 체육활동도 활발해졌다. 그 결과 1920년 7월 13일 대한체육회의 전신인 조선체육회가 창립되 었고, 조선체육회는 제1회 전조선 야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여러 종목의 경기를 주최하고 후원했다. 이후 조선에 다양한 스포츠 경기 종목이 전파되고 전문 체육인이 등장하면서, 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일제 탄압이 고조된 상황에서도 조선인은 체육활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했다. 조선인 지도자들은 스포츠가 조선의 국권 회복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해 체육활동을 장려했다.

한국 스포츠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도 헝그리 정신으로 대변되는 투혼을 발휘 하며 국제무대에서 활약했다. 한국은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2개를 땄고,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레슬링 부분에서 양정모가 금메달을 딴 것을 신호탄으로 1980년대 들어 스포츠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04년 제28회 아테네 올림픽부터는 4회 연속으로 종합 순위 10위 내에 이름을 올렸다.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국제 대회 개최국이 되었다. 이후 2002년 제17회 한일 월드컵, 2018년 제23회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선진국 문턱에 올라선 면모를 과시했다.

한국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한국에서 열린 여러 국제대회를 통해 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한편, 생활체육 환경도 함께 발전하였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손흥민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

 

스포츠 활성화 기반

 

한국은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이 긴밀히 연결돼 있어, 스포츠 기반이 그만큼 넓다.

한국에서 축구 인기는 대단하다. 프로축구 K리그 경기가 해마다 3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되는데, 지역에 연고를 둔 12개 팀이 최종 우승을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국가 대항전이 열릴 때마다 펼쳐지는 ‘붉은악마’의 열띤 응원도 볼 만하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던 박지성(맨유)을 비롯해 손흥민(토트넘) 등 외국에서 활약 중인 선수도 적지 않다.

축구는 한국인의 일상에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동호인들이 휴일 아침 일찍 가까운 운동장에 모여 축구를 하는 조기축구회가 있다. 전국적으로 이런 조기축구회 회원 수가 60만 명에 이르며, 지역별 클럽으로 뭉쳐 있다

야구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축구 못지않다. 전국적으로 10개 구단이 참가해 KBO 리그전을 펼치게 된다. 2019년 프로야구장을 찾는 관중이 연간 750여만 명에 이를 정도로 국민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선수가 늘면서 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마라톤 클럽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봄, 가을 주말이면 거의 매주 전국적으로 마라톤대 회가 열린다. 이런 아마추어 마라톤대회에 수천에서 수만 명이 참가한다. 또한 주요 마라톤대회 참가 인원이 2만 명을 훌쩍 넘었으며, 전문 선수와 아마추어 선수가 함께 출전한다.

산이 많은 한국은 등산의 천국이다. 대도시 주변에 산이 많아 주말이면 누구나 산에 오를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산은 암벽이 많아 암벽등반의 최적지이다.

제주도의 걷기 여행 코스인 ‘제주도 올레’는 걷기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걷기 좋고 아름다운 산책길이 많이 생겼다.

또한 친환경 스포츠로 자전거 타기가 각광을 받으면서 자전거 클럽이 많이 늘었다. 전국을 종주 하고 횡단하는 자전거 도로가 있다. 한강과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큰 강둑을 따라 주변에는 자전거 도로가 있어 주말이면 많은 사람이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이러한 한국의 생활체육 활성화 배경에는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대회 개최 이후 스포츠를 관람하는 간접스포츠 형태에서 스포츠에 참여하는 직접스포츠 형태로의 변화를 비롯해 급속한 경제 발전과 생활 여건의 개선, 그리고 점차 증대되는 여가가 있었다.

한편 전문체육의 발전을 위한 기본 전제조건으로 생활체육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 되면서 생활체육은 양적으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국민의 체육활동 수요를 정기적으로 파악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생활체육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18 체육백서’에 따르면 생활체육 동호인 클럽 수는 11만 5,303개이고 동호인 수는 557만 9,640명으로 이는 전체 인구 대비 10.8%에 해당한다.

춘천마라톤
매년 10월 강원도 춘천시에서 열리는 국제마라톤대회

제주도 올레
제주도의 걷기 여행 코스. 올레란 제주도 방언으로 좁은 골목이란 뜻으로, 통상 큰길에서 집의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을 말한다. 언론인 서명숙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생활체육 클럽 수 및 동호인 수 변동 추이

 

스포츠 강국으로 성장

 

진천선수촌 태권도 연습장에서 품새 종목에 출전하는 태권도 선수들

한국이 세계 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폭넓은 스포츠 인구와 체계적인 투자 덕분이다. 자질이 있는 어린 선수를 발굴해 과학적으로 훈련시키고, 다양한 경기에 출전시켜 실전 경험을 쌓 도록 한다. 또한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선수들은 별도의 전문체육시설에서 집중적 으로 훈련받는다.

한국은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스포츠 역학은 물론, 심리학, 생리학 전문가들이 선수 옆에서 경기 직전까지 최상의 성적을 내도록 도움을 준다.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KISS)은 이러한 과학 훈련을 진두지휘하는 곳이다. 전신인 한국스포츠개발원 시절에도 경기 상황에 과학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훈련을 진행했다. 2016년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는 석·박사급의 30여 명 전문가로 구성된 스포츠과학실을 별도로 신설해 본격적인 메달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1966년에 국가대표를 육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울에 태릉선수촌이 건립됐다. 태릉선수촌은 육상 경기장을 비롯한 각종 종목의 훈련시설을 갖추고 한국의 과학 스포츠 진흥을 이끌었으며, 2017년 충청북도 진천에 제2 선수촌인 진천선수촌이 건립되면서 51년 역사를 마감했다. 진천선수촌은 5개 종목, 최대 1,150여 명의 선수가 훈련할 수 있도록 태릉선수촌의 5배 규모로 지어졌으며 국가대표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숙박하며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한다. 이 밖에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에는 태백선수촌이 있다. 국가대표 및 후보선수들의 고지대 훈련을 위한 장소다.

 

국제대회 개최국으로 위상 강화

 

광복 후 한국의 스포츠는 비약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특히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 및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부터 10위권에 진입하며 스포츠 강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은 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 월드컵 축구대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등의 세계 5대 메가 스포츠와 아시안게임과 유니버시아드도 개최한 스포츠 강국이다.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1988년 서울에서 제24회 하계올림픽이 개최됐다. 전 세계 160개국에서 13,304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였다. ‘화합과 전진’을 기본이념으로, ‘최다의 참가, 최상의 화합, 최고의 성과, 최적의 안전, 최대의 절약’을 목표로 치러졌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2번째, 세계에서는 16번째로 올림픽 경기대회 개최국이 되었다. 경기는 23개 정식종목과 2개 시범종목 등이 치러졌는데, 한국은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를 따내 종합 4위를 차지했다.

제24회 서울 올림픽은 세계 동서 진영이 모두 참가한 화합의 올림픽이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1980년 제22회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서방이, 1984년 제23회 LA 올림픽에는 동구권이 참가 하지 않아 반쪽 올림픽으로 치러졌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매우 의미가 깊은 것이다.

제24회 서울 올림픽은 올림픽 헌장 정신에 따라 이념분쟁과 인종차별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한국의 발전상, 문화, 전통, 한국인의 잠재력을 지구촌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002년 제17회 한일 월드컵

제17회 한일 월드컵은 2002년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31일간 한국과 일본에서 치러졌다.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두 나라가 공동개최한 대회이다.

또한 유럽과 아메리카 이외의 대륙에서 첫 번째로 열린 대회이다. 제17회 한일 월드컵은 이변의 연속이었다. 특히 한국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4강 신화를 쓰며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붉은악마로 불리는 축구 팬의 열광적인 응원 또한 세계에 한국의 또 다른 면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붉은악마의 응원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이어져 거리 응원이라는 새로운 응원 문화를 만들 었다. 한밤중 거리를 가득 메운 한국 시민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전 세계를 감동케 했다.

제24회 서울 올림픽 기장
제24회 서울 올림픽 기장은 한민족의 전통 문양인 삼태극의 모습을 표현했다. 한옥의 대문, 공예품 등에 널리 사용되어 온 삼태극은 올림픽을 통한 세계 온 인류의 평화 증진을 상징한다.

2002년 제17회 한일 월드컵 경기 중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많은 시민이 함께 응원하고 있다. 독특한 응원 구호와 함께 대규모 응원문화를 만들어냈다. 지금도 주요 경기 때마다 붉은악마의 응원은 이어지고 있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1년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개최됐다. 역사와 현대기술이 어우러진 국제도시 대구에 위치한 대구경기장은 2002년 제17회 한일 월드컵, 2003년 하계유니버시 아드대회 등 굵직한 국제스포츠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경기장으로, 첨단 ICT 기술을 접목한 고화질 전광판을 통해 전 세계 육상 팬들에게 육상경기의 생생한 감동을 선사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장애물 달리기 경기

2015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2015년 7월 3일부터 7월 14일까지 광주광역시에서 개최된 국제스포츠 대회이며, 21개 종목, 143개국 총 17,036명이 참가하였다.

한국은 1997년 무주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와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이후 세 번째 로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개최하게 되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개최된 평창 동계올림픽은 동계 스포츠 역사의 기록을 새롭게 썼다. 역대 동계올림픽 최대 규모인 92개국 2,920명의 선수가 참가하였고, 나이지리아, 에리트레아, 말레 이시아, 싱가포르, 에콰도르, 코소보 6개국은 최초로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등 동계 스포츠의 저변 을 확대했다. 또한 우수한 빙질 덕분에 세계 신기록 3개, 올림픽 신기록 25개가 쏟아졌으며, 입장권 108만여 매를 판매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세계 최초로 5G 기술과 가상현실, 초고속 비디오 스트리밍, 자율주행 등의 기술을 선보여 화제 가 되었으며, 이에 대해 CNN은 ‘평창 올림픽, 5G 기술에 힘입어 사상 최대 하이테크 올림픽’이라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올림픽의 가치와 정신을 잘 구현한 평화 올림픽으로 세계인의 뇌리에 기억되었다. 특히 북한은 선수 22명, 응원단 229명, 고위 임원 27명이 참가하여, 동계올림픽 역사상 최대 규모로 참가했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들은 공동 입장하였으며, 여자 아이스 하키팀은 올림픽 사상 최초로 남북한 단일팀으로 참가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한류와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프로그램을 포함해 1,800여 회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문화 올림픽의 표본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종합 7위를 기록하며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빙상 종목 외에도 스켈레톤, 봅슬레이, 컬링 등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함으로 써 한국 동계 스포츠의 저변 확대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패럴림픽에서도 크로스컨트리 스키 부문 금메달을 따며 종합 16위에 올랐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고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입장하는 남북 선수단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
최민정(쇼트트랙)
500m 탈락의 아픔을 이겨내고, 주 종목인 1,500m와 3,000m 계주에서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치며 여자 쇼트트랙 2관왕을 차지했다.
윤성빈(스켈레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새로운 ‘스켈레톤 황제’로 등극한 윤성빈은 역대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경기를 보여주었다.
여자 컬링
매 경기 넘치는 에너지로 경기를 치른 김은정, 김경애, 김선영, 김영미, 김초희 5명의 선수는 ‘팀 킴(Team Kim)’으로 불리며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컬링 불모지에서 내로라하는 강호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며 결승에 진출한 한국 컬링 대표팀은 스웨덴에 우승을 넘겨주고 은메달을 획득했다.
 

프로스포츠, 땀으로 쓴 역사

 

한국은 축구, 야구, 농구, 배구, e스포츠, 바둑 등의 종목에서 프로리그를 갖추고 있다. 한국의 프로 스포츠는 1982년 6개 팀으로 구성된 프로야구가 탄생하면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83년 프로축구, 1997년 프로농구, 2005년 프로배구가 출범하였다. 현재 한국에는 축구, 야구, 농구, 배구 4개 프로리그를 중심으로 프로스포츠 발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축구는 2002년 제17회 한일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의 선전으로 4강 진출, 2010년 제19회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16강 진출, 2012년 제30회 런던 올림픽 동메달 등의 기록을 달성했다. 야구는 2008년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우승,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준우승,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우승 경력이 있다. 이러한 성적을 바탕으로 국내 프로스포츠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관중이 가득한 잠실 야구장에서 야구팬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한국이 스포츠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2017년,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에 ‘모든 국민이 스포츠를 즐기는 활기찬 나라’라는 비전을 포함했다. 삶의 증진과 건강한 나라를 위한 복지수단으로 생활체육 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공공 스포츠클럽 증대 및 생애주기별 맞춤형 스포츠 프로그램 등을 통해 모든 국민이 생활체육을 접하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에 각 지자체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을 통합해 전 국민을 위한 커뮤니티와 편의시설을 더한 맞춤형 스포츠시설을 확충하였다. 또한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융합 한 이벤트를 통해 생산된 수익을 다시 생활체육에 투자해 지역주민의 생애주기에 맞춘 생활체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지역주민의 생활체육 참여율이 3배 증가하는 등 한국 은 스포츠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였다.

e스포츠는 21세기에 들어서며 매력적인 문화 콘텐츠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18년에는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시범종목으로 e스포츠가 채택되면서 정식 스포츠로 점차 인정 받고 있다. 한국은 1998년 IT 산업 추진 이후 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디지털화가 진행된 IT 선진국으 로, e스포츠 산업 또한 빠르게 발전하였다. 2001년에는 한국e스포츠협회를 창립해 선수 관리, 경기 규칙, 대회 방식을 체계화하였으며, e스포츠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현재는 세계적인 e스포츠 선수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로서 e스포츠 종주국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시장 규모는 전 세계의 13.1%에 불과하지만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게임의 정상급 선수를 보유하고 있어, 한국 e스포츠의 가능성은 전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주요 프로스포츠 경기당 평균 관중 수

열기 가득한 e스포츠 경기장

열기 가득한 e스포츠 경기장